2012년 3월 14일 수요일

2010. 12. 27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의 기억.
 
 그 밤이 있기 전의 아침이 엘리가 프놈펜으로 떠난 아침이었다.

 나는 바다에가 수영을 하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싸온 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잔 후 사람이 없는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해는 일곱시 부터 저물어 들기 시작했고 난 방 안에서 음악을 듣고, 담배를 피고, 어제 남은 냉장고안의 맥주를 마셨다. 사방이 막힌 호텔방 안이 답답해 호텔 야외의 레스토랑으로 나갔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기에 켜진 불빛이 없어 어두웠다. 이층에 있는 바에서 사람들의 술을 마시며 당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두운 곳에서 가만히 앉아 엘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떠나는 것이 무서웠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원하고, 네가 원하면.”
 난 한 번도 누군가 내 곁을 떠날 때 슬프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아빠,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예 돌아가셨을 때 빼고는. 하지만, 4일밖에 만난 적이 없었던 완전히 낯선 이가 떠나는 것이 난 왜 이렇게 슬플까? 

 아침에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그의 집에 들렀을 때 우리는 같이 아침을 먹었다. 그가 슬퍼 보인다고 했다. 울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있는 웃긴 내 표정을 상상해봤다. 
그가 ‘헤어짐은 달콤한 슬픔’이라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2층의 바에서 새 나오는 어두운 불빛 밑에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가 떠난다는 사실이 슬퍼서, 그리고 내 앞에 남아있는, 내가 살아야할 인생이 두려워서.

 그날 밤, 1시쯤에 잠자리에 들었고 인기척에 잠에서 깨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희미한 플래시 라이트를 들고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요 몇일간 나를 굉장히 언짢게 생각하는 것 같았던 깡마르고 나이든 게스트하우스의 경비원이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가 위협적이거나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여긴 캄보디아잖아.’
 그는 문이 잠겨있지 않아 들어와 봤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가 반가웠다. 그가 내 침대에 잠시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어봤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잠시 생각한 뒤 내 방에는 의자가 없는 것을 알고 침대에 앉아도 좋다고 했다.
 그가 엉성한 영어로 야간경비일이 정말 심심하다고 불평했다. 그가 아름다운 프랑스 청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래는 그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내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었지만 그가 나오지 않아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줄 알았다.)
 그는 프랑스청년과 내가 어울려 다니는 걸 알기 때문에 내게 말해준 것 같다. 프랑스청년이 내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5시에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30분정도 멀뚱히 기다리다 바로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갔다고까지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서운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그가 조금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불을 켜지 않고 플래시라이트만 켠 채로 한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가 라이트로 잠시 내 재떨이를 가리키더니 담배를 피운다고했다. 그가 쥐고있던 라이트는 차가운 푸른빛이었지만 그 빛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 호텔방의 풍경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장면 같았다.
 그는 경비원 일이 졸립다고 했다. 이 침대에서 잠시 자고가도 되냐고 웃으며 묻길래 그의 등을 치며 당연히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더 있다 가라고 말 하고 싶었으나 혹시 그가 다른 뜻으로 오해할까봐 그냥 가게 내버려두었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 나도 프놈펜으로 떠나는 버스를 타야했기에 그 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것은 내 영혼이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구지 꼭 그가 아니었어도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위로받았다.

 그 밤이 있기 전의 아침이 엘리가 떠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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